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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구현초등학교 앞 마을마당에 모인 이들이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를 들으며 근처 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은평민들레당·생명다양성재단·서울환경연합의 활동가·연구원들과 시민들 총 19명이 줄지어 걸었다. 이들은 최근 봉산의 나무들에 봄마다 설치된 ‘끈끈이 롤트랩’으로 인한 나무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모였다. 기자는 은평구 주민 김수영·강병훈씨 부부, 환경과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에 참여한 서울시민 권모씨와 동행했 자동차 할부 계산 다.
2020년 서울 은평구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서 대벌레가 ‘대발생’했다. 대벌레는 나무줄기 모양으로 생긴 곤충이다. 사람에게 해를 입히진 않지만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도시 곳곳의 벽과 벤치, 사람에게까지 달라붙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 민원이 늘자 지자체는 대벌레를 포획하기 위해 양면에 끈적끈적한 접착 성분이 묻어있는 20~30㎝ 폭의 이삿짐센터 테이프인 ‘끈끈이 롤트랩’을 설치했다. 나무의 기둥 부분에 여러 차례 둘둘 만 뒤 타카(철심을 박는 도구)로 고정한다. 은평구는 2021년부터 대벌레가 부화하기 전 3~4월 봉산 일대 나무에 끈끈이 롤트랩을 감았다. 지난해에만 롤트랩 630롤이 쓰였다.


☞ “하늘에서 벌레가 비처럼 떨어져”…올해도 가중평균차입이자율 은평구 봉산 점령한 대벌레 떼
     https://www.khan.co.kr/article/202107201420001





대벌레를 포획하기 위해 끈끈이롤트랩을 설치하는 모습. 서울시 제공

박해수
은평민들레당의 나영(활동명)은 끈끈이 롤트랩으로 봉산의 생태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나영은 “대벌레뿐 아니라 애벌레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여러 곤충이 무작위로 끈끈이 롤트랩에 붙어 죽는다.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는 박새 같은 작은 새들의 털이 붙어 있는 경우도 발견했다”며 “끈끈이 롤트랩을 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상장된기업 칼자국이 깊이 나 나무껍질은 물론 그 안의 형성층까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산 중턱에서부터 네다섯 명씩 조를 짜 등산로 가까이에 있는 나무의 피해 정도를 살폈다. 끈끈이 롤트랩이 감긴 흔적이 있는 나무의 수종을 살펴본 후 끈끈이 비닐을 설치할 때 박은 타카심이 남아있는지, 롤트랩 잔여물이 있는지, 롤트랩을 제거할 때 생긴 칼자국은 몇 개인지, 손상 정도는 심한지, 나무껍질이 벗겨지거나 터졌는지, 상처 근처에 곰팡이가 퍼졌는지, 수액이 누출됐는지를 표에 기록했다.
이들과 함께 살펴본 결과, 실제 끈끈이 롤트랩이 감긴 적 있는 나무들은 멀리서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끈끈이 롤트랩이 감겼던 자리는 유난히 색이 진하거나 연했다.



서울 은평구 봉산 등산로 인근 나무들. 끈끈이 롤트랩이 감겼던 부분은 색깔이 유난히 진하다. 오경민 기자


“여기 하나, 둘…뒤쪽에도 칼자국 하나 더 있네요. 엄청 깊어요.”
“여기 타카심도 있어요. 주변에 되게 많네요.”
가까이 다가가면 곳곳에 박힌 타카심과 칼자국이 보였다. 이날 기자가 조원들과 조사한 22그루의 나무 중 20그루에서 타카심이 확인됐다. 한 그루에 다섯 개까지 발견하기도 했다. 타카심에 끈끈이 롤트랩이 엉켜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끈끈이 롤트랩 설치가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진 만큼 박힌 지 오래돼 녹슨 타카심과 비교적 새것인 타카심을 구별할 수 있었다.



서울 은평구 봉산 한 벚나무 한쪽에는 끈끈이 롤트랩을 설치하기 위한 타카(동그라미)가 박혀있고, 한쪽에는 롤트랩을 제거하기 위한 칼집(화살표)이 나 있다. 오경민 기자





서울 은평구 봉산 등산로 인근 나무들이 끈끈이 롤트랩 제거를 위한 칼집에 상처를 입은 모습. 오경민 기자


칼자국도 대부분 개체에 나 있었다. 나무껍질의 자연스러운 갈라짐과 칼로 그어진 상처의 모습은 달랐다. 우연히 생긴 터짐·갈라짐은 일정하지 않은 반면 칼로 만든 상처는 끝과 끝이 예리한 모양이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22그루 중 칼자국을 확인하지 못한 나무는 단 한 그루뿐이었는데, 비교적 표면이 굴곡져 상처와 나무껍질의 틈을 구분하기 어려운 떡갈나무였다.
느티나무, 벚나무, 팥배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끈끈이 롤트랩의 영향으로 변색되거나 껍질이 벗겨지고 뒤틀리는 피해를 보았다. 상처가 벌어져 그 사이로 부후균이 퍼진 나무도 많았다. 나무를 분해하는 곰팡이인 부후균은 그 자체로 나무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나무가 건강하지 않을 땐 생명을 갉아 먹기도 한다.
껍질이 얇은 벚나무의 피해가 특히 심각했다. 대부분의 벚나무가 칼자국 좌우로 껍질이 돌돌 말려 있는 등 상흔이 컸다. 상처 양옆과 위쪽으로 부후균이 번진 뒤 고사한 나무도 있었다. 나무 꼭대기 쪽으로는 검은 버섯이 나 있었고, 노란빛 혹은 연둣빛을 띠어야 할 나무껍질 안 형성층은 검게 변해 있었다. 끈끈이 롤트랩으로 인해 고사했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상처 위쪽으로 부후균이 크게 번진 것으로 보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나영은 추측했다.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 끈끈이 롤트랩이 감긴 뒤 고사한 벚나무. 오경민 기자





또 다른 벚나무의 끈끈이 롤트랩이 감겨있지 않던 가지 부분(왼쪽)과 끈끈이 롤트랩이 감겨 있던 몸통 부분(오른쪽). 롤트랩이 감겨있던 부분에는 롤트랩을 벗겨내기 위한 칼집이 나 있고 주변으로 나무를 분해하는 부후균이 퍼져 있다. 오경민 기자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시민들은 나무를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빗방울이 굵어진 3시30분이 넘어서야 젖은 옷 위로 우비를 하나둘 겹쳐 입기 시작했다. 4시30분쯤 조사를 마쳤을 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당장 눈앞의 하산길에도 커터칼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서울 은평구 봉산에 서 있는 한 나무에 뿌리 근처까지 커다란 상처가 나 있다. 나무 피해 조사를 마친 뒤 조사단 눈앞에 나타났다. 오경민 기자


끈끈이 롤트랩은 꼭 필요할까. 물리적인 방식으로 곤충을 포획하는 끈끈이 롤트랩은 나무를 모두 베어내거나 화학 살충제를 뿌리는 방식보다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덜 미치는 ‘친환경 방제’로 알려져 있다. 은평구 관계자는 “끈끈이 롤트랩 설치는 산림청 훈령에서도 ‘친환경 방제 방법’으로 분류한다. 우리 구뿐 아니라 서울시 다른 자치구, 고양·수원·의왕·대전·원주 등 전국에서 롤트랩을 통한 방제법을 활용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롤트랩 설치를 통한 방제가 가장 친환경적인 방제 방법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끈끈이 롤트랩의 방제 효과에 회의적이다. 정종국 강원대 산림환경보호학과 교수는 한국산림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끈끈이 롤트랩에는 대벌레 외에도 다양한 절지동물과 먼지 등이 부착됨에 따라 방제 효과 감소가 예상된다”며 “이외에도 다양한 거미류, 벌류, 파리류 등 산림 내에서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절지동물류의 포획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여름마다 대벌레가 숲 곳곳에 뒤엉킬 정도로 증식한 데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는 책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에서 대벌레 대발생의 원인을 봄철 기온이 올라가 부화율이 높아진 데다 도시 생태계가 균형을 잃으며 대벌레의 천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들은 끈끈이 롤트랩 등의 방제로 대벌레 발생이 감소했다고 자평하지만 서울환경연합 등 환경단체는 향후 ‘대발생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대벌레의 개체수가 조절되고 밀집도가 낮아졌을 거라고 본다.
조사를 마치고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 앞에 모인 시민들이 소감을 나눴다. “끈끈이 롤트랩이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 인근에만 설치된 것을 보고 ‘전시행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익충이다 해충이다 구분하는 것도 너무 인간 중심적인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됐어요. 좀 징그러워도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라고, 동물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해요.”
나영은 “오늘 조사를 바탕으로 올해는 끈끈이 롤트랩을 좀 더 조심히 제거하라거나 끈끈이 롤트랩 설치 자체를 재고하라는 단체 민원을 은평구에 제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지난해 대벌레 발생률이 감소해 올해는 축소 방제할 계획”이라고 했다.



2021년 서울 은평구에서 발견된 대벌레. 네이처링·강홍구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