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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배은설 기자]
경북에 가면 언젠가 꼭 가봐야지 점찍어둔 곳이었다. 마음 속 기대감을 가지고 지난 22일 이곳으로 향했는데, 겉모습이 평범하다. 학사골목에 들어서자 보이기 시작한 외관은 분명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크게 특별하진 않았다. 혼자 높게 쌓아둔 설렘이 스르르, 살짝 무너졌다.
이윽고 문 앞에 다다랐다. 이곳은 독립서점이자 무인서점이다. 문에 책방지기가 남긴 입장 안내문이 붙어 있다. 책방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그 답은 서점 앞 하얀 우체통 안에 있단다.
살짝 무너졌던 설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우체통 문을 살짝 열어보니 과연 답이 담겨있다. 미션을 수행하듯 알아낸 비밀번호를 꼭꼭 누르자 닫혀 있던 문이 열렸 쌍용 다. 경북 영주의 책방 '좋아서점' 이야기다.

책방지기 손길 곳곳에 묻어나는 경북 '좋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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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 학사골목에 위치한 좋아서점


ⓒ 배은설




좋아서점에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로 완전히 문이 닫히자 외부의 소음은 은행 파업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덧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 오롯이 생겨난다. 어느 작은 세계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한눈에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아담한 공간이다. 그 작은 공간 안, 쨍하게 샛노란 색. 테이블 위에 노란 튤립 세 송이가 놓여있다. 책방 밖은 쌩쌩 움츠러드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책방 아이들급식비 안은 이미 봄이었다.










▲  좋아서점 내부 공간을 밝히는 노란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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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은설




좋아하는 책을 아껴 읽듯 천천히 책방 안을 구경했다.

밀란쿤데라, 알랭드보통 등 유명한 해외 작가들의 책이 진열돼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작품들도 보인다.

다양한 로컬, 환경 관련 책과 더불어 영주에 위치한 서점인만큼 영주 출신 지역 작가들의 책, 영주를 담은 책 등도 볼 수 있다. 종종 책 아래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책에 대한 내용, 영주 추천 여행지, 영주 추천 맛집 등이 책방지기의 손글씨로 적혀있다.










▲  좋아서점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책들


ⓒ 배은설




고심 끝에 큐레이션했을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좋은 향기가 코끝에 닿아 있다. 책방 한쪽에 놓인 인센스 스틱이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무인'서점 이라는 건조한 어감과는 달리, 책방지기의 정성스런 손길이 곳곳에 묻어난다.

책을 구경한 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면, 이번엔 직접 결제를 하면 된다. 책값 결제방법에 대한 안내문 역시 친절한 손글씨로 적혀있는데, 포장봉투를 재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씩 실천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조금 나아지겠죠? 동참해주세요.'


지구를 향한 책방지기의 다정한 시선이 기껍다. 책임과 의무를 가진 같은 지구인으로서 당연히 동참해야지. 굳이 포장 대신 들고 있던 가방 속에 쏙 넣어도 될 일이다. 아니면 책 한 권 겨드랑이에 낀 채 돌아다녀볼까. 그럼 날 좀 더 지성인으로 봐주려나 어쩌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방 안쪽에는 필사의 자리도 마련돼 있다. 아름다운 문장을 한 자, 한 자 따라 적어 내려가는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정말이지, 혼자서 온전히 이런 공간을 누릴 수 있다니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대문자 I, 내향형의 인간들에게는 더없을 공간이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방명록 속 이야기에도 하나하나 다 눈길이 머문다.
책방 안을 구경하다 보니 보드게임도 발견했다. 보드게임 상자 위 책방지기의 손글씨를 또 만났다.

'오늘, 책이 보기 싫은데 서점에 왔다면? 그럼 추억의 도미노게임 어때요? 차분히 하나씩.'


책방이지만 책 읽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기 전 혼자 높이 쌓아뒀던 설렘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어느덧 즐거움으로 바뀌어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좋은 것들로 가득한 곳. 즐겁다.
책방 내에는 큼지막하게 쓰인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책방 이름도 '좋아서'점이다. 얼굴 본 적 없는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무엇일지 짐작하겠다.
온라인서점이 대세인 요즘, 동네 지키는 책방들의 의미는
사실 동네 구석구석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작은 책방들은, 이제 하나 둘 사라진 지 오래다.
책 사는 과정도 확연히 다르다. 표지에 적힌 책 제목에 잠시 눈길이 머무르다 조심스레 책장을 몇 장 넘겨보는 대신, 클릭 클릭.
클릭 몇 번이면 금세 책을 살 수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 사는 게 일상인 시대다. 아니, 사실 이제는 책 자체를 잘 사지 않는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영주에는 좋아서점 뿐만 아니라 스쿨서점, 대한서점, 세종서적, 학원서점, 책방하리, 북그북그 등 신기하게도 서점이 꽤 많다. 특히나 1954년에 문을 연 스쿨서점은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다.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고 한다.










▲  경북 영주 스쿨서점


ⓒ 배은설




요즘 같은 세상에 책 파는 일을 오래도록 업으로 삼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좋아서점이 무인서점으로 운영되는 이유 역시, 독립서점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선택한 방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동네 책방들이 있다. 정성껏 선별한 책들,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 마련 등 제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책방 고유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좋아서점을 비롯한 세상의 작은 책방들이 백년가게가 되길. 그런 꿈같은 바람을 좀 가져 봐도 될까.
지역의 작고 소중한 공간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오래도록 지켜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봤다.
덧붙이는 글